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공산당 (문단 편집) === 냉전시대 === 그러나 냉전이 격화되면서 1947년 내각에서 추방되었고, 이 후 제4공화국 내내 총선에서 원내 1당의 지위는 유지했으나, 매번 내각 구성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야당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초기 프랑스 공산당은 프랑스와 베트민 간의 연립정부 구성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이후 전쟁이 격화되면서 1947년 혹은 1948년부터 베트민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표명했다. 사실 1945년에서 1947년 사이에 유일하게 베트남의 탈식민화를 주장한 정당은 프랑스 공산당 뿐이었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됨에 따라 보다 명확한 반제국주의적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 당수이던 모리스 토레즈는 1950년 4월 프랑스 공산당 제7 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에서 '''지금부터 베트남의 평화를 위해 투쟁을 하는 것,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하는 베트남 민족의 자결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선언했으며, 1951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또한 '''인도차이나 전쟁이 아시아에서 미 참모부의 전략적 기지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미국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 후 [[샤를 드 골]] 주도의 [[프랑스 제5공화국|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원내 2당으로 추락했고, 이 후 무비판적 친소 노선과[* 열성 당원이었던 [[이브 몽땅]]이 언론 인터뷰에서 [[프라하의 봄|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무력 침공]]을 비판했다가 당에서 쫓겨날 정도였다.] [[68운동]] 당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것 등이 누적되면서 인기를 잃어, 결국 좌파 진영의 주도권을 [[프랑수아 미테랑]]이 영도하는 [[프랑스 사회당]]에게 내주게 된다. 실제로, 1969년 드골 사임 직후의 대선에서 [[자크 뒤클로]]가 21.3%를 득표하여 간발의 차로 결선투표에 탈락한 것은 마지막 영광이 되었다. [[1971년]]에는 [[조르주 마르쉐]]가 서기장에 취임했다. 1977년, 프랑스 공산당 제22차 당대회에서 공산당은 "계급투쟁 노선 속에서 민주주의를 추구, 자유민주적 공산주의 추구"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공산당 지도부는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유럽공산주의]]로 전환하였다. 또한 사회당과 선거연대, 정책연대를 추진하는 등 대중정당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좌파 진영의 주도권을 놓친 상황에서는 사후약방문. 오히려 1978년 총선에서는 최초로 사회당에 득표를 추월당했다. 실제로 당시 당 내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한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존재했는데, 대표적으로 당 내의 주도적 사상가였던 [[루이 알튀세르]]가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althusser/1977/22nd-congress.html|프랑스 공산당 제22차 대회에 대한 테제]]를 발표하며 공산당의 노선 전환을 비판한 것이 널리 알려져있다. 1981년 대선에서 조르주 마르쉐는 15.3%를 득표하여 미테랑의 25.9%에 크게 밀렸다. 울며 겨자먹기로 공산당이 [[비판적 지지]]를 선언한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곧이어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범좌파 진영이 5공화국 출범 이 후 처음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로랑 파비위스]] 내각에서 4명의 장관을 배출하는 데 성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인민전선 내각 때와 마찬가지로 파비위스 내각에서도 사회당과의 불협화음은 끊기지 않았고, 결국 1984년에 사회당-공산당 연정이 붕괴되면서 다시 야당으로 전락한다. 좋게 말하면 여권 내 야당이었으나, 나쁘게 말하면 여당도 야당도 아닌 이 행보는 실정 책임론은 그대로 받으면서 사회당 지지표도 깎아먹는 자충수 그 자체였다. 이후로도 [[신임과 보완]] 형태로 각료직을 내기도 했지만 극우 성향 [[국민연합(프랑스)|국민전선]]의 대두와 [[소련]]의 [[소련 해체|해체]]로 다시 암흑기에 접어든다. 86년에 총선 득표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